[독서] 오정희의 소설 - 옛우물

카테고리 없음|2021. 2. 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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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오정희의 소설 - 옛우물

2021년 2월 10일

 

역시나 수능 공부 중에 지문으로 나온 소설인데 너무 좋아서 가져와봤다.

 

오정희 옛우물

 


[2015-3-9월 국어평가원]

- 오정희, 옛우물-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사십오 년이란 무엇일까. 부자도 가난뱅이도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마술사도 될 수 있는 시간일뿐더러 이미 죽어서 물과 불과 먼지와 바람으로 흩어져 산하에 분분히 내리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창세기 이래 진화의 표본을 찾아 적도 밑 일천 킬로미터의 바다를 건너 갈라파고스 제도로 갈 수도, 아프리카에 가서 사랑의 의술을 펼칠 수도 있었으리라.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도,광야의 선지자도 될 수 있었으리라. 피는 꽃과 지는 잎의 섭리를 노래하는 근사한 한 권의 책을 쓸 수도 있었을 테고 맨발로 춤추는 풀밭의 무희도 될 수 있었으리라. 질량 불변의 법칙과 영혼의 문제, 환생과 윤회에 대한 책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납과 쇠를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사도 될 수 있었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나의 가야 할 바를 알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 작은 지방 도시에서, 만성적인 편두통과 임신 중의 변비로 인한 치질에 시달리는 중년의 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유행하는 시와 에세이를 읽고 티브이의 뉴스를 보고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으로 알려진 두 가지의 일간지를 동시에 구독해 읽는 것으로 세상을 보는 창구로 삼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아들의 학교 자모회에 참석하고 일주일에 두번 장을 보고 똑같은 거리와 골목을 지나 일주일에 한 번 쑥탕에 가고 매주 목요일 재활 센터에서 지체 부자유자들의 물리 치료를 돕는 자원 봉사의 일을 하고 있다. 잦은 일은 아니지만 이름난 악단이나 연주자의 순회공연이 있을 때면 남편과 함께 성장을 하고 밤 외출을 하기도 한다.

갈라파고스를 떠올린 것도 엊그제, 벌써 한 주일 이상이나 화재가 계속되어 희귀 생물의 희생이 걱정된다는 티브이 뉴스에 비친 광경이 의식의 표면에 남긴 잔상 같은 것일 테고 더 먼저는 아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들에 붙여 놓은, ‘도도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도도]가 무엇인가를 묻자 아들은 4백 년 전에 사라진, 나는 기능을 잃어 멸종된 새였다고 말했었다. 누구나 젊은 한 시절 자신을 전설 속의, 멸종된 종으로 여기지 않겠는가. 관습과 제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두려움과 항거를 그렇게 나타내지 않겠는가.

우리 삶의 풍속은 그만큼 빈약한 상상력에 기대어 부박하다. 삶이 내게 도태시킨 가능성에 대해 별반 아쉬움도 없이 잠깐 생각해 본 것은 내가 새로 보태어진 나이테에 잠깐 발이 걸렸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나는 이제 혼례에나 장례에 꼭 같은 한 가지 옷으로 각각 알맞은 역할을 연출할 줄 알고 내 손으로 질서 지워지는 일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마늘과 생강이 어우러져 내는 맛을 알고 행주와 걸레의 질서를 사랑하지만 종종 무질서 속으로 피신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을 보면 장래희망이 대통령, 세계여행, 과학자, 화가 등등 다양했었는데,

지금 우리는 성적에 맞춰 대학 전공을 선택하고 대기업은 나이 많은 신입사원은 채용을 안 한다며 창업 등에 도전할 여유도 없이 대학 졸업 후 부리나케 취업한다. 그리고 늦지 않게 결혼하며 대출받아 내 집 마련하고 그 집값이 많이 오른 사람을 보고 성공한 인생이라 말하며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작가는 45살에 과거에 꿈꿨던 게 생각났다면 나는 30살에 생각이 났다.

몇 주전에 심심해서 생기부 열람을 해봤는데 잊고 있던 내 어렸을 때 꿈은 천문학자였었다. 천문대에서 외계에서 오는 신호를 받아 적으며 조용히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책도 출판해보고 전시회도 열어보고 싶어 했었다.

지금 나는 꿈이라는 게 있나, 그저 돈을 더 벌어보려는 수단만 생각하는 거 아닌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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